[2000년 3월, ‘붉은 장미의 맹세’ 사건]
[2000년 3월, ‘붉은 장미의 맹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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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3월, 팝리니지에는 조용한 글 하나가 올라왔다.
“3월 14일 저녁 8시, 해질 무렵 다크엘프 숲 근처에서 기다릴게요.”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뭔가 특별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처음 본 사람들은 이벤트성 글이라 생각했지만, 댓글을 살펴본 유저들은 사연을 알아차렸다. 그 글은 약속이었다. 한때 리니지에서 만난 두 사람이 1년 전 나눈 맹세를 다시 이어가자는 의미였던 것. 그들이 정한 재회의 날은, 화이트데이였다.
팝리니지에선 이 글을 두고 “사랑의 재도전?”, “진짜 나타날까?”라는 반응들이 쏟아졌다. 글쓴이는 이후로 아무 말도 없었고,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드디어 3월 14일 저녁, 수많은 유저들이 ‘다크엘프 숲’에 몰려들었다.
사람들은 둘의 재회를 구경하기 위해, 일부는 도우러, 또 일부는 그냥 심심해서 구경하러 왔다. 시간이 다가오자 유저들은 질서를 유지하고 조용히 숲 중앙을 비워줬다. 8시 정각, 검은 망토를 두른 남자 캐릭터가 등장했다.
모두가 숨죽이고 있는 가운데, 잠시 뒤 붉은 망토를 두른 여자 캐릭터가 나타났다. 유저들은 환호했고, 스크린샷은 바로 팝리니지 실시간 게시판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두 캐릭터는 마주 서서 아무 말 없이 붉은 장미를 바닥에 떨구었다.
이내 남자가 말했다. “늦어서 미안해.”
여자가 답했다. “그래도 와줘서 고마워.”
수많은 유저들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들은 짧게 인사한 뒤 조용히 자리를 떴고, 사람들은 아무도 따라가지 않았다.
그날 밤, 팝리니지에는 “이게 진짜 사랑이구나”, “오늘 진심으로 울었다”는 글들이 가득했다. 유저들은 즉흥적으로 ‘붉은 장미 챌린지’를 열어 서로에게 가상 장미를 보내는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다.
며칠 뒤, 팝리니지에 다시 글이 올라왔다.
“모두의 배려 덕분에 다시 마음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글쓴이는 끝에 이렇게 남겼다. “우리 이야기는 짧았지만, 잊히지 않을 거예요.”
이후 매년 3월 14일, 리니지 유저들은 다크엘프 숲에 모여 조용히 그 순간을 기억했다. 몇몇은 장미를 놓고, 몇몇은 추억을 나눴다. 그리고 해마다 팝리니지는 그 날의 기록을 아카이브에 정리해 올렸다.
모든 이들이 공감했다. 진심은 언어를 넘어 전해질 수 있다는 걸.
그리고 이 모든 감동은… 변함없이 팝리니지에서 시작되었다.